유튜브 쇼츠를 둘러보던 중 [나의 해방일지]를 편집한 영상을 보았다. 거기 댓글에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나의 해방일지]와 [우리들의 블루스] 둘 다 우리들의 지치고 우울한 현실을 기반으로 해서 참 공감이 많이 간다고. 그런데 [나의 해방일지]는 숨 쉴 구멍이 없다고. [우리들의 블루스]는 현실이 아닌 다른 도피가능한 공간으로 시청자들을 이끌어서 그것보다 더 인기가 있는 것 같다고. 청개구리 심보였을까. 추천한 반대의 것을 봤다.
스스로 행동파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오히려 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걸 보면 게으름에 더 가까운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근데 그 노력은 꽤나 삶에 영향력이 있었던 것 같다. 매 년 새 인연들을 만나게 되는 것을 보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건 꽤 즐거운 일이다.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나게 되고, 나와 잘 맞는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생기고, 지금껏 갈고 닦아온 스스로의 모습과 관계술을 검토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지난 기억들을 반추해보면 가장 낮은 온도로 지낸 사람들과 아직까지도 그 연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처음부터 너무 뜨거우면 금방 식더라고.
나 자신의 캐릭터 성에 관한 고민을 늘 한다. 되고 싶은 나와, 지금 현재의 나와, 진짜 나. 크게 세 가지로 구분짓는다. 인격이란 아주 불안정한 것이라 생각한다. 날 때부터 정해진 것도 아니고, 자라온 환경이 전부 결정하는 것도 아니고. 대충 어릴 적의 기억을 토대로 꾸준히 변화되어 가는 거 아닐까. 그리고 이러한 고민은 누구나 하기에 개성있는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 아닐까. 어떠한 형태이든 그는 스스로를 정의 내렸고, 그것을 꾸준히 현실에 인쇄해나가고 있는 거니까. 지금 누군가 나는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면 계속해서 질문하는 사람이라고 답할 것 같다. 개성은 그 질문들에 답해온 내 과거가 알아서 보여주지 않을까.
글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많이 읽고 많이 쓸 수 만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라고 했다. 1년 후 나는 거기에 돈을 아주 많이 벌고 싶다고 추가했다. 지금은 더 많아졌다. 지금은 그저 하나만 특출나게 잘하는 게 다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두루두루 잘하는 것. 뭐 하나 잘하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을 잘 해내야 한다. 잘 해내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선택과 집중이 남은 선택지들을 아예 제쳐두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최근에서야 깨달아가는 중이다.
글쓰기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 나는 이상은 언제나 처참히 부서질 수 있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차가운 현실은 결핍을 만든다. 결핍은 사람들을 이상으로 이끈다. 그 이상 속에서 누군가는 또다시 추락한다. 추락은 다시 결핍이 된다. 현대사의 동력은 이게 아닐까. 이같은 과정이 계속해서 되물림되는.
그래서 나는 결핍이 있는 사람들에게 끌린다. 결핍을 마주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간다. 그것에서 자기만의 세상을 쌓아올려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한다. 그것이 어떤 결핍이든, 어떤 세상이든. 내가 댓글을 읽고 [우리들의 블루스]가 아닌 [나의 해방일지]를 선택한 이유도 이와 같다. 아주 재미있게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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