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만 21 세16 시덥잖은 정의 갖다 치워 삶은 단순히 생존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믿는다. 하지만 생존에 직접적으로 위협을 받으면 그것들이 모두 의미가 없어지는 게 현실이다. 내 가족이, 내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면 반드시 피의자를 찾아내 그의 가족과 형제와 친구를 모두 죽일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내 가족, 내 사람들이 나를 정신적으로 살해했던 것도 현실이다. 돌로 찍어 죽이고, 칼로 목을 베어버리고, 총으로 머리를 뚫고, 생화학 무기로 온몸을 불태워죽인다. 역사는 늘 힘 있는 자의 정의에 세상이 맞춰졌다. 그들의 정의엔 늘 희생과 살육이 정당화되었다. 다수를 살리기 위해 소수를 버린 지도자는 언제나 반대파가 따른다. 그런데 그 소수에 지도자의 가족이 포함되어 있으면 모두 숙연해진다. 누군가는 죽어야 할 때 소수를 죽이는 결.. 2021. 12. 6. 운수 안 좋은 날 무조건적인 내 편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날 이후로 모두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여전히 함께 식사를 하고, 수다를 떨다 웃고, 여행도 같이 가곤 하지만 더 이상 싸우지 않는다. 그날 이후로 누구와도 싸워본 적이 없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지도 않는다. 갖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다. 그 날은 또 다른 그날들을 빚어냈다. 처참하게 부서진 밑동에서 처참하게 부서진 가지들이 솟아났다. 시작은 셋이서 빚어냈지만 이제는 셀 수도 없다. 다들 어딘가 망가져버렸다. 이상하고, 신기하게도 굳이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먼저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다. 오랜 지인들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에 대해 잘 알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도 여전히 아득히 멀리 있다. 본능적으로 설정된 자기.. 2021. 12. 4. 아름다운, 아름답길 매혹, 위험하고 경계하게 되는 것. 그 끝을 알면서도 쉽게 뿌리칠 수 없는 것. 한 번쯤은 온몸을 맡겨보고 싶은 것. 난 죽음으로써 삶이라는 예술 작품을 완성시킨 그녀에게 완전히 매혹되어있었다. 인생이란, 무언가 부족하고, 그 부족함을 깨닫고, 그것을 채우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킬 때 가장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 되는 게 아닐까. 그래서 그녀는 죽음을 택한 것일까. 그녀의 삶에서 부족했던 것은 죽음이었을까. 6개월이 지났다. 그녀는 이제 기억의 저편으로 넘어가 아주 간간히 생각나는 정도로만 남았다. 그녀의 빈자리는 다른 것들이 채웠다. 나는, 아름답지 않다. 2021. 12. 3. 진심을 다한 내 모습이 너무 개같아요 "세상을 바꿔보자. 우리의 젊음을 태워보자."세상은 너무 고지식하다. 편한 길이 있는데도 절차와 명분을 내세우며 굳이 돌아간다. 야, 우리 세상을 바꾸자. 이 답도 없는 세상에 우리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자. 너도, 나도 동의했다. 몇 년을 태웠고, 네가, 그리고 내가 세상에 녹아들면서 그 몇 년은 그저 탔을 뿐이었다. 별 이유 없는 재였다."나도 별거 없지만, 고민이 있을 땐 언제든 나한테 물어봐."몇 년 전 나의 모습이 보였다. 같은 고민에 빠진 아이가 목전에 있었다. 사람마다 가치관은 다르고 환경도 다르다. 사람은 스스로 길을 찾는다. 결국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다. 내가 걸어온 길도 그렇게 밟아온 자취였다. 근데 왜 네게 손을 건넸을까. 오지랖인 거 알면서 왜 자꾸 손을 건넬까. "많이 힘.. 2021. 11. 17. 이상형이 뭐에요? 가벼운 호의일까. 이성적 호감인가. 떠보는 건가.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예전에 누굴 만났더라. 그러니까. 아. 음.'귀여운.. 스타일 좋아합니다.'무난하다. 무난해서 지나치게 심플하다. 자칫 무난한, 그저 귀여운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전락해 몇 달 후엔 기억 그 너머의 인간이 될 수 있는 답이다.'딱히... 없는 것 같아요. 만나는 사람이 이상형 아닐까요.'한두번 연애를 해본 티가 난다. 연애를 안 해본 것처럼 보이는 게 좋을까. 아니면 어느 정도 해본 것처럼 보이는 게 맞을까. 아니면 굉장한 연애고수로 보이는 게 나으려나.'왜 궁금하신데요?'사나워 보이지만 상대의 의중을 직접 물을 수 있다. 거기에 답하기 어려운 질문에 재질문함으로써 곤란한 상황을 넘길 수 있다. 다만 본래의 안건에 대한 답을 .. 2021. 11. 9. 너가 싫다는 것 타인을 싫어하게 되는 경위는 깊이 생각해보지는 않았으나 경험상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 같다. 다만, 이번에 할 이야기는 싫어하는 일, 그 이후의 이야기다. 친구 A가 있다. 그는 나의 절친이다. A는 동급생인 B를 싫어한다. 나는 B를 모른다. A는 나에게 B를 싫어하게 된 경위를 여러 날에 걸쳐서 조금씩 들려준다. 나도 B를 싫어하게 된다. 시간이 조금 많이 흐른다. 졸업 후 A와 여전히 친하게 지내긴 하지만 거리가 멀어졌다. 예전처럼 항상 붙어서 지내지는 못한다. 그리고 우연히 B를 만나게 된다. B가 나에게 반갑게 인사한다. 오랜만이라며 고기를 사준다. 20대 청춘의 괴로운 일들은 고기를 먹으면 낫는다며 상당한 거금을 들여 저녁을 산다. 무슨 꿍꿍이인가 싶어 물어보자, 학교에서 내가 별 생각없이 한 .. 2021. 7. 31. 오늘은 월요일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월요일이 찾아왔습니다. 저는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고, 밥 먹고, 일하고, 취미생활도 즐겼습니다. 오늘 서울에 사는 한 일가족이 코로나에 걸렸습니다.오늘 성남에 사는 김모군은 방학을 맞이했습니다.오늘 대구에 사는 한 커플은 혼인신고를 했습니다.오늘 캐나다에 사는 부부가 아이를 가졌습니다.오늘 일본에 사는 할아버지가 고독사하셨습니다.오늘 미국에 사는 청년이 자살했습니다.오늘 이란에 사는 여자아이가 폭발에 휘말려 죽었습니다.일상이 뭘까요. 흔들림 없이 잔잔한 하루가 지나면 그게 일상인 것일까요. 감정이 요동치는 날은 비일상인 것일까요. 태어나고 죽는 날도 비일상인 것일까요. 태어나고, 여차저차 다양한 하루들을 겪고, 그리고 죽는 것까지가 삶이라면 이.. 2021. 7. 19. [돌이킬 수 없는 약속] 야쿠마루 가쿠 《본문은 소개된 책의 원문 인용이 아닌 패러디임을 미리 밝힙니다》"노부코씨, 사실 이 세계가 지옥이 아닐까. 음, 지하 4층 정도의 지옥인거지. 생전에 죄가 있으면 한 단계 아래의 세계로 떨어지고 어떤 기준을 만족하면 윗 단계의 세계에 태어나게 되는거야." 그녀의 등을 보며 말했다."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그녀가 답했다."세대를 거칠수록 자연스레 죄질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같은 세계에 모이게 되는거지. 그런 사람들끼리 모여 각자의 죄스러움과 악함이 상호간에 작용해 서로가 서로에게 벌을 주는거야. 사실은 인간이 악마였다, 라는 지옥인거지." 노부코씨의 카레가 완성이 되고 드디어 그녀와의 마지막 식사시간이었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이 식사가 끝나고 나는 새 인생을 살 수 있다. 그리고 몇 십년 후 그녀의 바램.. 2021. 7. 14. [가면산장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본문은 소개된 책의 원문 인용이 아닌 패러디임을 미리 밝힙니다》별장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몰고 온 차의 운전석에 앉아 지나온 길을 살펴봤다. 이리저리 굽어있는 S자 형태의 길. '그래, 도모미가 의도하지 않고서야 그리 간단히 추락하진 않았겠지.'시동을 걸고 기름을 확인했다. 천천히 액셀을 밟아 차를 움직였다.'처음부터 다 의도가 되어있던 연극이었어. 모두 가면을 쓰고 나를 대했던거지. 내가 도모미를 대했던 것처럼. 왜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까. 처음 별장에 들어섰을 때 가면을 보고 떠올릴수도 있었을텐데. 가만, 가면? 나올 때 가면은 분명히 없었는데? 언제부터 없었던 거지? 이것도 극중 의도된 부분인가? 그들이 가면으로 의미한 바가 뭐지?'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갓길에 세웠다.'극중에 가면이 있었던 .. 2021. 7. 9. 이전 1 2 다음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