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호의일까. 이성적 호감인가. 떠보는 건가.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예전에 누굴 만났더라. 그러니까. 아. 음.
'귀여운.. 스타일 좋아합니다.'
무난하다. 무난해서 지나치게 심플하다. 자칫 무난한, 그저 귀여운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전락해 몇 달 후엔 기억 그 너머의 인간이 될 수 있는 답이다.
'딱히... 없는 것 같아요. 만나는 사람이 이상형 아닐까요.'
한두번 연애를 해본 티가 난다. 연애를 안 해본 것처럼 보이는 게 좋을까. 아니면 어느 정도 해본 것처럼 보이는 게 맞을까. 아니면 굉장한 연애고수로 보이는 게 나으려나.
'왜 궁금하신데요?'
사나워 보이지만 상대의 의중을 직접 물을 수 있다. 거기에 답하기 어려운 질문에 재질문함으로써 곤란한 상황을 넘길 수 있다. 다만 본래의 안건에 대한 답을 미루는 것일 뿐이다. 이것도 정답은 아니다.
'남한테는 I이지만 나한텐 E인 사람.'
약간. 본심을 흘려버렸다. 아. 흘려버린건가. 아니면 일부로 흘린 건가.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냐.
진짜 이상형이 뭐였더라. 연애는 왜 하는 거더라. 사랑은, 뭘까. 현사회에선 각자 인생의 목표를 스스로의 행복에 두고 타인이 나의 행복을 책임질 수 없다는 인식이 다수의 동의를 얻고 있다. 쉽게 말해 개인주의에 대한 사회적 동의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가슴속에 낭만을 품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현실의 벽에 무수히 치여가며 돈의 왕좌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은 문장 몇 개로 치환되고, 그것에 따라 각각의 경제적 가치가 매겨진다. 최근에는 그나마도 사라져 경제력이 유전 법칙에 따라 결정된다. 행복하려면 사랑도 해야 하고, 좋아하는 일도 해야 하고, 좋은 사람들도 만나야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경제력 하나에 좌지우지된다는 사실이 전래동화처럼 몇 세대를 걸쳐 전파됨에 따라 행복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는 공식이 우리들의 뉴런에 자리 잡아버렸다. 행복하려고 돈을 모은 두 남녀가 만나 행복을 나누기 위해 돈을 거래한다. 집주인에게 월세를 내고, 집안일에 대한 대가를 받는다. 함께함으로써 외로움도 해결할 수 있다. 그 외에는 간섭하지 않는다. 이미 많은 작품들에서 이러한 소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계약결혼의 형태도 점차 늘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저기요. 저기요!!"
"네? 아 네."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
"평양냉면 같은 사람. 오묘하고 슴슴해서 이게 무슨 맛인가 싶다가도 문득 생각나 다시 먹으러 가게 되어버리는 그런 사람이 좋네요."
같은 대화가 테이블을 한 바퀴 돌기 시작한다. 뻔하디 뻔한 대화가 오간다. 아 그 종로역에 있는 유진식당 평양냉면. 그거 내일 먹으러 갈까.
'만 21 세 > 생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름다운, 아름답길 (0) | 2021.12.03 |
---|---|
진심을 다한 내 모습이 너무 개같아요 (0) | 2021.11.17 |
너가 싫다는 것 (0) | 2021.07.31 |
오늘은 월요일입니다 (0) | 2021.07.19 |
어렵다라는 말보단 쉽지 않다는 말이 더 좋아요 (0) | 2021.07.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