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은 소개된 책의 원문 인용이 아닌 패러디임을 미리 밝힙니다》
'인생이란, 무언가 부족하고, 그 부족함을 깨닫고, 그것을 채우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킬 때 가장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 되는 게 아닐까. 그래서 그녀는 죽음을 택한 것일까. 그녀의 삶에서 유일하게 부족했던 것은 죽음이었을까. 인생이란.'
간만에 꽃집에 들렀다. 다소 거리가 멀었지만 아는 곳도, 와본 곳도 여기뿐이었기에 발걸음을 일로 옮겼다.
'돈이 조금 아까운데.'
하얀 바탕에 분홍빛이 옅게 물든 장미를 샀다. 그래도 기왕 산거 서프라이즈로 주려고 했는데 그녀는 이미 내가 오는 것을 확인하고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멋쩍게 그것을 건네자 네가 기뻐하며 받았다. 소름이 돋았다.
"포장해드릴까요?" 점원이 물었다.
"네, 해주세요." 라고 답했다.
간만에 와도 여전히 기억이 나는 길이다. 늦봄 나무에 봉오리가 올라올 무렵 자주 걸었었다. 네 친구네 부모님이 하시던 치킨집, 네가 친구와 자주 갔다던 카페, 네가 좋아하던 골목, 그리고 네 집. 이제 문자를 보내면 네가 나온다.
-집 앞이야.-
-잠시만 기다려.-
-응.-
가져온 짐들에 한 번씩 눈길을 준 뒤 문 앞에 다가섰다.
"오랜만이야."
"그러게 간만이네."
"들어와. 집 안은 처음이겠네."
"실례하겠습니다."
생각보다 좁았다. 좁은 건 알고 있었지만 세 식구가 살기엔 턱없이 좁았다. 이런 곳에서 살고 있었던 건가.
"언제 할래?" 그녀가 식탁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네가 준비가 되면 언제든지." 내가 답했다.
그녀가 씻는 동안 집 안을 청소했다. 기다리는 동안 딱히 할 것도 없었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기 위함도 있었다.
"자기야 나 준비 다 했는데." 그녀가 화장실에서 얼굴을 내민 채 말했다. 뭐라 답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짐을 챙겨 화장실에 들어갔다.
"편하게 누워 있어." 그렇게 말하고 손에 칼을 쥐어준 채 나왔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표정이었지만 구태여 듣지 않았다. 별로 내키지 않았다.
물이 넘쳐 흐르는 소리만이 귀에 들어온다. 남자는 가방에서 검은 코스모스를 꺼낸다. 포장지를 벗겨 내고 화장실에 들어간다. 호스를 잠그고 여자의 가슴 위에 꽃을 올려둔 채 집에서 나온다. 편의점에 들러 담배를 산다.
한 남자가 담배를 물고 손에 흑색 튤립을 든 채 역으로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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