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랑해'를 이해해보려 노력하다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어떤 감정이 들어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사전에서 특정 단어를 이해하기 위해 다른 단어나 문장으로 치환하여 의미를 파악하는 것처럼 '사랑하다'도 다른 말로 치환해보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 과거를 돌이켜보며 무엇이 사랑이었을까 한참을 뒤적였지만 결국 결론이 나지 않았다.
#2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엄마가 바로 보인 것, 그게 사랑이야
글을 쓰기 시작한 후로 올해 초부터 그런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모여 3개월간 격주 토요일마다 만난다. 만났을 때에는 각자가 쓰고 있는 글들에 대해 자유롭게 수다를 떨다가 간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친목모임처럼 여겨진다. 최근에 나는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을 쓰고 있다. 타이밍이 적절하다 싶어 어제 모임자리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사랑하다'를 다른 말로 치환하면 뭐가 될 것 같은지 물어봤다. 이건 그 답변들 중에 하나이다.
"이건 커뮤니티에서도 자주 보이는 유명한 일화인데, 어떤 꼬마애가 유치원에서 공연을 했는데 그 공연의 주제가 사랑이었나봐요. 공연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엄마가 꼬마애한테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냐 물었을 때 공연을 보러 온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엄마가 바로 보인 것, 그게 사랑이라고 했대요. 사랑이란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수많은 사람 중에서 특별한 존재가 생기는 것. 그 특별함이 사랑이 아닐까요."
그 특별함이란 아마도 소중함이었을 것이다. '사랑한다'는 '너는 내게 소중한 존재야'라는 말로 치환될 수 있겠다 싶었다.
#3 네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모가 자식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느끼는 것도 사랑이고, 남자와 여자가 만나 스파크가 이는 것도 사랑이고, 부부간의 깊은 유대도 사랑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것 모두를 사랑이라고 하는데 사실 실제로 느껴지는 감정의 흐름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들 간에 공통적인 부분이 있으니까 모두 사랑이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
나는 그것을 상대가 죽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유전적 차이, 자라온 환경, 경험, 심리•정서적 발달 정도 등에 따라 성격이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수많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사람은 모두 다를 수밖에 없고 그렇기에 서로에게 진실로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이 거의 없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체라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죽음이다. 우리 모두는 태어나자마자 죽음을 본능적으로 느낀다. 모든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이 전제가 되니 사랑이란 유한한 삶에서 깊은 농도의 희로애락을 함께 해준 사람들에게 느끼는 상대를 아끼는 마음인 것이 아닐까.
#4 사랑이 없는 삶을 살다
사랑이 없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지금까지는 그렇다고 쳐도 앞으로 평생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사랑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연애와 결혼을 하지 않는 것으로 국한한다면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당연히 미친 듯이 외로울 수도 있겠지만. 사랑의 의미를 일이나 반려동물 등의 사람 이외의 것까지 넓힌다면 사랑이 없는 삶은 살 수 없을 것 같다. 사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다만 행복하기 위해서 우리들은 살아간다. 지금 당장이 행복하지 않더라도 앞으로의 행복을 위해 지금의 고통을 부단히 견뎌낸다. 사랑이란 행복한 삶이 유지되기 위한 주요 재료라 생각한다. 행복하지 않으면 우리는 살아갈 이유를 잃어 갈피를 못 잡고 영원히 휘청이지 않을까.
#5 '좋아해'가 쌓이면 '사랑해'가 된다
'사랑하다'가 무슨 감정을 대변한 말인지 궁금했던 이유는 사실 연애에서부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관심이 가고 좋아해본 적은 있는 것 같은데 사랑해본 적은 없다. 사랑한다는 말은 했지만 내가 사랑해서 말한 게 아니라 그녀가 듣고 싶어 하기 때문이었다. 사랑하지 않는데 사랑을 고한다는 것은 꽤나 스스로에게도 상처가 되었다. 진심이 없는 나의 말에 그녀도 베였겠지만 동시에 나도 베였다. 나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인 것일까. 그런 생각에 빠져들었다.
나는 애니메이션 보는 것을 꽤나 좋아하는 편이다. 최근에 유행했던 [귀멸의 칼날]도 재밌게 봤었고 상당히 마이너한 감성의 작품들도 다양하게 접했다. 저번 달이었나 이번 분기에 독특한 매력이 느껴지는 작품이 있길래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 보았다. 주인공은 그 세계의 신이 만든 '그것'이다. '그것'은 불로불사이다. '그것'은 신에 의해 인간 세계에 들어온다. '그것'은 주변을 모방하는 능력을 통해 돌이었다가, 늑대였다가, 사람으로 변모한다. 그렇게 사람들 사이에 섞여 들어가며 생명체로써의 삶, 인간성, 그리고 지능을 배워간다. '그것'이 처음으로 자신에게 어머니가 되어 그를 돌봐주었던 인간의 죽음을 통해 인간성을 깨달았을 때, '그것'은 폭주한다. 그때 깨달았다. 내게도 죽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주에 한 번은 싸우면서 그래도 부모님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게 사랑이구나. 네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네가 나에게 너무 소중하다는 말이 곧 너를 사랑한다는 말이겠구나. 아무리 지지고 볶고 싸워도 결국 너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곧 사랑이구나.
부모님을 좋아한 지 21년 차, 나는 그들을 사랑하고 있다. 여기에서 힌트를 얻었다. '좋아해'가 쌓이면 '사랑해'가 되는 것이구나. 처음 만난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다. 강한 이끌림이 있을 수는 있겠지. 다만 이제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서로에게 강하게 이끌려 좋아하게 되고, 좋아함의 세월이 쌓여 점차 소중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에게 스며들어가는 과정이 곧 '좋아해'를 쌓아가는 과정이고, 그렇게 점차 '좋아해'가 '사랑해'로 되어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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